후지필름 x100v을 사용해봤다.
6개월, 7천컷. 사실 오랜 기간, 많은 양을 사용해본 것은 아닐 수 있따. 사람에 따라서 이 시간과 컷수가 어떻게 다가올지는 저마다 다를 텐데, 어떤 사람은 '그 정도밖에 사용 안 하고 뭘 아냐'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충분히 리뷰할 만한 시간과 경험이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취미로 사진을 찍은 지 대략 10년이 지난 시점에 있다. 여기서 "사진이 취미였다"라는 표현은 엄밀하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취미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를 사용해보는 것도 취미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취미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 것보다 카메라라는 기기를 사용해보고 사고 파는 것을 취미로 생각하곤 한다. 정작 사진은 몇 컷 못 찍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찍어보지도 못했지만 새로운 기기를 사용해보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들.
필자 역시도 그런 유형의 취미생활을 오래 해왔다. 캐논 40d로부터 시작해서 첫 풀프레임이었던 5D, 올림푸스 E-M10, E-M1, 리코 GR, 후지필름 X100F, 니콘 D750, 캐논 EOSR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후지필름 X100V까지. 소니를 제외한 웬만한 브랜드들의 카메라를 다 사용해봤다. 그 많은 카메라 기변을 거치면서도 소니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것은 스스로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소니는 전자기기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 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제외되곤 했었다.
아무튼 이렇게 필자가 가지고 있던 기변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카메라를 6개월, 7천컷 사용해본 시점에서도 나름대로 후지필름 X100V라는 카메라에 대한 글을 작성해볼 만한 경험적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다. 반년 정도의 시간 동안 나름 중요한 순간마다 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옛날과 달리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남기기도 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카메라, 정말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겨준 카메라이기에 이 카메라에 대해 소개해보고 싶다, 아니 솔직하게 자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사용후기를 쓴다.
다만 카메라가 예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자 하고, 기능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셔터스피드가 얼마고, 조리개가 얼마고. 이미 이런 부분에 대해 기록한 글들은 수없이 많을 터. 카메라가 예쁘다는 것도 사실 다들 알고 있지 않나. 때문에 카메라 사진 하나도 없고, 오로지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만 나눠보면서 결과물과 만족도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가능하면 사진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이 글에 업로드되는 사진은 모두 후지필름 x100v로 촬영됐고, 라이트룸을 통해 후보정을 거친 사진들이다. 당연히 필자에게는 한 장 한 장이 소중하기 때문에 무단으로 도용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도록 하겠다.
엄청난 휴대성
카메라를 들고다니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짐으로 여겨지는지 느껴보셨으리라. 뭐, 무조건 좋은 사진을 남길 거다, 인생샷을 남길 거다 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오히려 불편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사진이 중요하고, 그 사진을 위해서라면 좀 거슬리고 무거워도 좋은 카메라를 들고 나갈 사진가들은 많을 거니까. 그러나 일상 속 사진을 남긴다고 생각하면 풀프레임 미러리스, DSLR은 굉장히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다.
바로 위 사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필자는 야구를 굉장히 좋아해서 가능하면 직관을 가려고 하는데, 대부분의 야구장은 좌석 간 거리가 굉장히 좁다. 서울 잠실구장, 인천 랜더스필드, 기아 챔피언스필드, KT위즈파크, 고척돔까지. 필자가 다녀본 구장들은 대부분 좌석이 매우 비좁은 편이었다. (여기서 테이블석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이런 상황을 뻔히 알기 때문에 야구장에 갈 때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가는 야구장, 제대로 담고 싶기는 한데 카메라를 들고 가자니 놓을 데도 없을 것 같고, 계속 메고 있기도 힘들 거고. 가져갈까 말까? 정말 엄청 고민한다. 당연히 놓고 가면 편하다. 요즘 핸드폰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미 알고 있다. 카메라로 찍는 것과 다른, 만족스럽지 않는 사진이 나올 거라는 점을. 필자는 캐논 EOSR을 주력으로 사용할 때, 이런 고민 속에서 카메라를 가져가보기도 했고, 놓고 가보기도 했다. 대개 그 불편을 감수한 만큼의 만족스러운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후지필름 X100V를 서브바디로 들인 후 - 캐논 EOSR도 여전히 보유 중이다 - 이런 고민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전히 거추장스럽기는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작은 무게와 부피로 인해 요즘은 고민하지 않고 야구장에 카메라를 들고 간다. 고민이 줄어들고 좋은 사진을 뽑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라져서 그럴까, 대부분 후지필름 X100V를 들고 갔을 때의 사진들은 지금 봐도 참 마음에 든다.
가볍다는 점과 부피가 작다는 점. 두 가지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가벼운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사진은 체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남기지 않게 되니까. 셔터를 누르는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한다. 그래서일까, 무게가 중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한다. 그런데 그만큼이나 부피가 작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붙박이 렌즈로 렌즈교환이 안 된다는 점이 단점이지만, 오히려 딱 작으면서도 수준급의 렌즈가 달려 있다는 점. 이로 인해 부피가 작아지고 심지어는 패딩 주머니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부피가 작으면 당연히 그 카메라를 수납하는 가방의 부피 역시 작아진다는 점. 이런 점들이 생각보다 사진을 자주 찍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거든.
필자는 이 카메라를 사용한 후부터 크로스백 하나만 메고 나가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작은 크로스백인데도 카메라 하나만 넣으면 수납이 되니까 굳이 카메라 전용 백팩이나 슬링백을 메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며 후지필름 X100V를 서브바디로 들이고 싶은 사람들 중에는 한 번 사진찍으러 나가기 위해 백팩에 바디와 렌즈 여러 개를 챙겨서 나가는, 그리고서는 집에 돌아와 메모리를 돌아보면 정작 마음에 드는 사진이 몇 장 없어 허탈감을 느끼는 사진가들도 계실 거다. 그런 분들에게 정말 강력하게 추천드리고 싶다. 후지필름 X100V 구매하시라.
사진품질의 만족감
물론 문제는 사진 품질이다. 후지필름 X100V뿐 아니라 후지필름 라인들을 메인으로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필자 같은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사진품질과 결과물이다. 화소가 어떻고, 크롭바디가 풀프레임에 비교하면 어떻고 하는 생각들. 누구보다 필자가 잘 안다. 그런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했던 기억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캐논 EOSR을 처분하고 후지필름으로 완전히 이사를 갈까를 고민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니까.
그러나 후지필름 X100V를 사용하면서 결과물의 품질이 너무 안좋아서 후보정을 하지 못하겠고, 사진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고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도 크롭바디고, 렌즈붙박이이고 하는 등의 생각이 들지 않았던 카메라, 너무나 좋은 결과물들을 항상 마주하게 해줬던 카메라이기 때문에.
계속 야간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드리지 않나. 불꽃축제가 있는 날이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필자도 EOSR과 RF70-200을 챙겼을 거다. 더 좋은 품질의 사진, 더 좋은 화각으로 찍은 사진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당일 불꽃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솔직히 아쉬웠다. 후지필름만 챙겼는데! 그런데 막상 찍어보면 결과물에 아쉬움이 없다. 차라리 후지필름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물촬영에 있어서도 매우 만족스럽다. 아스티아라는 필름시물레이션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꼭 그 시뮬이 아니어도 사람의 피부나 느낌을 담아내는 데 후지필름은 매우 강력한 장점이 있다. 캐논이 아무리 사람 피부를 예쁘게 담는다고 해도, 후지필름이 주는 느낌은 내지 못한다니까.
또 실내에서 찍은, 광량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광량이 부족하고, 크롭센서고, 최대개방이 F2인 카메라이지만 약간의 노이즈를 색감과 화질이 충분히 커버해준다. 오히려 캐논으로 담았을 때 나오지 않는 감성과 색감이 나온다는 점에서 더 만족감을 느낀다.
당연히 광량이 충분할 때의 결과물은 더더욱 만족스럽다. 한 번 생각해보시라. 필자가 모든 사진들을 후지필름 X100V라고 기록해놨기 때문에 후지필름으로 찍은 사진이구나 생각하겠지만, 그냥 이 사진만 보고 풀프레임인지 크롭바디로 찍은 것인지 구분하실 수 있겠는가? 렌즈교환식으로 찍었는지, 붙박이 똑딱이 렌즈로 찍었는지 분간이 되시는가. 거의 분간되지 않는다. 결과물, 화질은 상황과 후보정을 통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다. 그것들이 마음에 걸리기엔 사진 결과물이 너무 만족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화각이 부족하면 찍고 크롭하면 된다. 화소가 낮지 않다. 정말 멀리서 크롭해도 밝은 날에는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사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위의 두 사진 모두 정말 멀리서 찍고 크롭하고 각도를 조절한 사진이다. 인쇄해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웹 환경에서 보면 크게 부족함이 없다. 순간의 형상과 색이 중요할 뿐.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 색감
후지필름을 이야기하면서 색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소니, 캐논의 새로운 바디들을 이야기할 때에는 AF 속도가 어떻고 연사능력이 어떻고, 동체추적이 어떻고를 이야기하지만, 후지를 이야기할 때에는 색감을 이야기하는 게 정석이거든. 필자를 비롯한 사람들이 후지필름을 찾는 단 하나의 이유를 꼽는다면, 아마 색감을 꼽을 수 있을 거다. 그정도로 후지에 있어서 색감은 중요하다.
후지필름의 색감, 정말 좋다. 물론 필자가 올리는 사진들은 모두 후보정을 거친 사진들이다. 후지필름으로 찍는다고 해서 필자가 올린 사진과 아주 동일한 느낌의 사진이 나오지는 않을 거다. 그럼에도 필자가 후지필름의 색감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필름 시뮬레이션 때문이고, 둘째는 색 표현 능력 때문이다. 일단 필름시뮬레이션이 너무 강력하다. 필름을 만들던 회사라 그런지 후지필름에서 만든 수많은 필름시뮬은 정말 매력적인 색감들을 뽑아낸다. 그냥 이 시뮬레이션만 입히면 된다. 그러면 느낌 있는 사진이 나온다. 클래식크롬, 클래식네가티브, 프로비아, 아스티아, 벨비아 등. 너무 매력적인 색감들이 나온다.
꼭 다른 시뮬레이션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가장 기본 색감이라는 프로비아만 사용해봐도 색 표현 능력이 참 좋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필자가 사용한 표현처럼 '느낌'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 개인은 색 표현의 핵심인 화이트밸런스를 잡는 능력과, 각각의 색을 기록하는 후지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낀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일까, 캐논으로 찍은 사진을 후보정하는 것보다 후지필름 X100V로 찍은 사진을 후보정하는 것이 더 편하고, 쉽고, 결국 더 매력적인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단 하나의 카메라
필자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여행에 딱 하나의 카메라를 가져간다면 어떤 카메라를 가져가겠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필자의 답은 "라이카 Q2"다. (ㅋㅋ) 아, 라이카 Q2가 내 로망이라고. 사용해보진 않았지만, 딱 한 대 들고가라고 하면 그거 들고 가고 싶은데 어쩌겠어.
그러나 지금 내 상황 속에서 딱 한 가지 카메라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후지필름 X100V를 선택할 것 같다. 캐논 EOSR과 RF50mm F1.2L, RF24-105mm F4L, RF70-200mm F4L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후지필름을 고르겠다. 캐논바디와 여러 렌즈들을 챙겨가는 게 더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기는 방법일 수도 있다. 실제로 유럽으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정말 좋은 사진들을 많이 남겼었다. 그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제대로 남기지 못했을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 무게와 고됨으로 인해 여행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점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다. 어깨가 많이 아팠고, 카메라를 들고 내리는 순간마다 손목이 시큰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카메라만 담은 백팩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다시 그렇게 가라고 하면 절대 갈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무거웠다.
반면 후지필름 X100V만 가지고 떠난 이번 베트남 여행은 여행 자체도 제대로 누리고, 마음에 드는 사진도 많이 남기고 왔다. 무겁지 않았고, 거슬리지 않았다. 이 정도의 무게와 불편감은 취미사진가로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아니 사실 감내한다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불편하지 않은 정도였다. 나름대로 카메라의 퀄리티를 포기하고 여행에서의 편의성을 선택한 것인데, 그런 것에 비해 담아온 사진들은 결과물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환산 35mm의 화각은 순간을 담기에 정말 적합했다. 물론 망원으로 담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몇몇 순간 때문에 70-200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가벼웠기 때문에 어떤 역동적인 순간에도 즉각적으로 카메라를 꺼낼 수 있었다. 떨어뜨릴까, 어디에 부딪힐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노이즈? 있다. 어두운 곳에서의 촬영? 흔들린다. 그런데 그 정도 문제는 10년의 짬으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다. 그걸로도 안 되면 그 순간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순간이니 눈으로 즐겨야 된다. 다른 카메라라고 될까?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할 거다. 이 카메라로 안 되면, 다른 카메라로도 쉽지 않은 순간이 더 많다. 카메라 스펙이 딸린다고, 기능이 딸린다고 하기엔 후지필름 X100V는 너무 고사양의 카메라다.
카메라의 무게로 지쳐 있다면 후지필름 X100V로 갈아탈 시간이다. 후지필름에서 돈 받은 거 없다. 다 내돈내산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메인 카메라를 팔고 다 후지로 바꾸고 싶어 고민하게 할 정도로 말이다. 카메라 기능이 좋아서? 조작성이 좋아서? 성능이 탁월해서? 아니다. 그냥 결과물이 좋기 때문이다. 찍고 보정했을 때 마음에 들고, 찍힌 상대가 만족하는 사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진가에게 그것만큼 중요하고 행복한 것이 어디 있을까.
최대한 사진을 틈틈이 보여드리려 했는데, 그럼에도 못 보여드린 사진이 몇 장 있어서 마지막으로 사진들을 올림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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