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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카메라, 렌즈

캐논 EOSR을 처분하고 후지필름 X-T5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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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EOSR
캐논 EOSR

보물 1호 캐논 EOSR

결혼을 1년 정도 앞둔 2019년 3월 28일 캐논 EOSR을 구매하게 된다. 당시 금전적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닌데, 결혼 준비하면서 모은 자금에서 아내가 카메라를 살 수 있도록 해줬다. 내 만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카메라로 주로 우리를 담았으니 꼭 나만을 위한 지출은 아니긴 했지만, 한 사람의 취미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이를 이해하고 용납해주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도. 

 

아무튼, 그렇게 캐논 EOSR과 RF24-105mm F4L 키트를 구매했고, 여기에 35mm F1.8을 함께 구매했다. 가성비 좋은 표준줌에 가성비 좋은 단렌즈 하나를 구성한 것. 이렇게 시작해서 EOSR을 쓰며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처음 밴딩노이즈 이슈를 내가 가장 먼저 발견하기도 했고 - 실제로 나무위키 "캐논 EOS R 시스템/바디" 항목 속 "2.1. EOS R" 항목에서 펌웨어 업데이트 후 발생한 밴딩노이즈 이슈에 대해 다루는데 해당 '확인'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내가 SLR클럽에 작성한 글들이 연결된다. 내가 처음 SLR클럽에서 문제제기를 했고, 이로 인해 펌업 시 문제 개선이 됐거든. - 렌즈를 추가해서 신혼여행을 떠나 유럽 및 발리에서의 사진들을 담기도 했다. 이 카메라를 2022년까지, 대략 4년 정도 사용하면서 정말 많은 사진들을 담았고, 소중한 추억들을 담았다. 

 

 

 

영국에서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EOSR과 RF50mm F1.2L 렌즈를 마운트해서 찍었던 이 사진은 나중에 캐논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되기도 하는 사진이다. 개인적으로는 창문 틈 사이로 보이는 런던의 새벽이, 그리고 그때를 마주하고 있던 내 설레는 마음이 온전하게 느껴지는 사진이라 소중하게 느껴진다. 

 

 

 

 

포르투갈에서의 사진은 더더욱 황홀했다. 따사로운 날씨 속 걸어다녔던 리스본은 정말 아름다웠고, 마침 떨어지는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역광으로 담았던 아내의 사진은 집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을 정도로 아끼는 사진이 됐다. 풀프레임 바디와 F1.2라는 심도가 더해졌을 때의 사진이 주는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벨렝탑 옆에서 그냥 특별한 생각 없이 눌렀던 셔터인데, 이 사진 역시 참 매력적인 사진이 됐다. 걸어다니는 사람들, 세워져 있는 또렷한 색감의 자전거, 하늘을 살짝 가리고 있는 나뭇가지까지. 뭐 하나 의도하지 않은 사진인데, 그냥 담은 사진이 계속 보면 볼 수록 매력적인 사진으로 남는 것. 소위 장비빨과 날씨빨, 풍경빨을 제대로 받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캐논 EOSR
캐논 EOSR

최종적으로 나의 바디 구성은 이러했다. 캐논 EOSR을 꾸준히 사용했고, 여기에 여행용과 광각을 커버하는 24-105mm F4L, 망원 및 행사를 책임지는 70-200mm F4L, 인물 및 표준을 담당하는 50mm F1.2L. 사실 구성으로 보자면 딱히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는 구성이었고, 완벽한 구성이었다. 취미사진가로서 이 구성으로 찍지 못할 사진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데 나는 이 카메라 세팅을 모두 처분했다. 캐논 EOS R을 구매했을 때 내 옛 블로그에 적었던 글의 제목이 이러했더라. "10년 친구" 직업 상 돈벌이가 넉넉하지 않은 필자에게 캐논 EOSR과 이런 구성은 보물1호, 전재산과 같았다. 우리 집에 도둑이 들면 이 카메라가 들어 있는 제습함만 들고 가면 다 가져가는 거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금전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소중했던 이 카메라를 왜 처분했을까? 

 

 

 

캐논 RF70-200mm F4L
캐논 RF70-200mm F4L
캐논 RF50mm F1.2L
캐논 RF50mm F1.2L RF24-105mm F4L
캐논 Rf24-105mm F4L

후지필름으로의 이사

이 모든 장비를 처분한 이유는 후지필름으로 이사를 하고자 결심했기 때문이다. 또 다시 후지필름이다. 옛날 X-Pro2에 35mm F2.0 렌즈 하나를 물려서 겨우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한창 잘 사용하고 있던 풀프레임 DSLR 니콘 D750과 탐론 24-70, 85mm 등을 처분하고 구매했던 바디가 후지필름의 크롭바디인 X-Pro2였다. 그때도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굳이 풀프레임을 쓰고 있는데 손해를 보면서 다 팔고 후지필름을 사냐고. 아쉽게도 대학원에 들어가며 당장 차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내가, 스파크 수동 한 대를 사겠다고 결국 처분하게 되면서 후지필름과의 만남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풀프레임 미러리스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DSLR처럼 크고 비대하지 않으면서도 풀프레임 센서가 들어 있는 카메라들이 많이 출시됐고, 그만큼 선택지가 넓어졌다. 소니, 캐논, 니콘까지. 모두가 미러리스를 출시했고, 내가 EOS R을 구매할 때에도 비교 대상에 후지필름은 없었다. 그 돈 주고 크롭바디를 왜 사. 

 

그런데 또 다시 풀프레임을 판매하고 후지로 간다. 아, 이렇게 글로 적으며 돌아보니 좀 이상하긴 하다. 후지필름이 뭐길래 이렇게 매번 풀프레임 바디를 버리고 또 돌아가는가. X100V를 서브바디로 들인 건데, 이 바디를 사용하면서 후지필름 색상에 다시 젖어들고, 후보정도 후지필름으로 할 때의 편리함을 많이 체감하게 됐다. 캐논의 색이 보편적이고 무난한 색인데도, 후지필름을 사용하다가 캐논을 사용해보면 후보정이 상당히 어렵고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럴 거면 그냥 후지필름으로 메인바디를 이동하자는 생각의 불씨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 불씨가 산불이 돼서 어느새 나는 중고장터에 내 장비들을 다 올리고 있었다. 혹시 이 글을 보며 후지필름이 궁금하시다면, 아직 써보지 않으셨다면 쓰지 마시라. 헤어나올 수가 없다. 

 

 

 

 

중고거래에 도가 터서 그럴까, 그 장비들을 다 처분하고 처분한 비용으로 벌써 렌즈 두 개를 준비했다. 사실 세 개를 구비하려고 다 결제했는데 하나는 재고가 아직 없어서 들어오는 대로 보내주신단다. 심지어 아직 바디도 없다. 렌즈만 덩그라니 받아본 건 처음이다. X-T5 예판은 언제 시작하는지도 모르는데, 일단 예판에 무조건 성공한다는 마인드로 렌즈부터 준비한다.

 

향후 바디가 오면 후지필름의 매력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내가 왜 X-T5를 구매하려고 하는지, 렌즈 구성은 어떻게 최종적으로 완성했는지 등에 대한 기록. 쓸 글감이 많아지는 건 좋은데, 하나하나 성실하게 풀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시간들이 놓여 있는 것 같아 취미사진가로서는 기쁘다. 기변은 항상 즐거워- 

 

 

장비병에 관하여

아, 그래도 한 가지 기록하고 싶은 건 어느 정도 기변병으로부터 자유해왔었다는 거다. 그정도로 캐논 EOSR은 좋은 바디였다. 항상 중고장터를 기웃기웃하며, 혹은 신제품이 나오면 신제품 페이지를 기웃기웃하며 어떤 바디가 좋다고 하면 써보고 싶은 마음에 손해를 보면서도 처분하고 구매하고를 반복하던 내가, 한 바디를 중심으로 꾸준하게 사진을 남기고, 그 사진 결과물로 인해서 즐거움을 느꼈으니까. 장비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가장 빠르고 명확한 길은 사진을 찍는 거다. 장비가 아니라 사진의 재미를 찾는 것.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인화해 소장하는 것. 이 과정들에서의 만족감을 찾아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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