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부산여행
비가 오는 부산, 뭘 할 수 있을까? 딱히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필자가 예상했던 부산은 화창한 부산이었다. 해수욕도 해야 하고, 맛집들도 다녀야 하고, 밤에는 광안리 해변에서 광안대교를 보면서 여유를 누리는 것도 계획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비가 오니 정말 할 게 없더라. 태종대도, 해동용궁사도, 센텀시티도 비가 오면 예상한 풍경이 나타나지 않으니 영 갈 힘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잠잠하게 보냈을까, 아쉬운 마음에 가본 보수동 책방거리는 이 날씨에도 부산을 있는 그대로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책을 읽는 것보다 모으고 소장하는 걸 좋아하는 필자에게 보수동 책방거리는 책 냄새 물씬 나는 정취 있는 공간이었는데, 그 정취가 다 전해질지 모르겠으나 찍어온 사진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조금은 삭막한 거리
뭐랄까, 보수동 책방거리에 딱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아서 그런 것인지 생각보다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골길이나 오래 된 거리들을 걸을 때 기대하는 정취가 있는데, 마치 을지로 공장 거리를 지나가는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막상 그 거리를 잔잔히 걷기 시작하니 서점마다 특징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고, 책 냄새를 정말 물씬 맡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 냄새가 난다는 것이 보수동 책방거리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각 서점들의 매력
생각보다 서점마다 특징이 분명했는데, 우리가 갔을 때 가장 먼저 마주했던 서점은 기독교 전문 서점이었다. 물론 기독교 서적만 판매하는 건 아니다. 앞쪽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만화책들이 나열돼 있다. 당연히 중고이지만. 슬램덩크 전권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집이 가까웠으면 구매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 슬램덩크는 신권으로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기독교서적에 대해서는 항상 흥미로운 마음을 갖는다. 전공서적들로 만났을 때는 지긋지긋했는데, 막상 졸업을 하니 그래도 어떤 서적들이 남아 있는지 눈길 한 번은 주게 되더란.
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서점 내부들이 보이는데, 책이 쌓여 있는 모습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상당히 규칙없이 전시되어 있는 중고책들. 아마 사장님은 무슨 책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아시겠지. 마치 우리가 책상에 이것 저것 막 놓은 것처럼 보여도 어디에 놓았는지 나름대로 규칙을 갖는 것처럼. 이렇게 많은 책들을 본 게 언제인지, 그냥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따듯했달까. 그렇게 정서적인 사람은 아닌데도, 실제로 그랬다.
개인적으로 우리 부부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물러서 책들을 살펴보았던 서점. 이름은 모르겠다. 다른 서점들에 비해 공간이 넓고, 조명도 따듯한 색의 조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지하쪽에도 공간이 있었다.
수많은 중고책들이 꽂혀 있었는데, 고전책들도 꽤나 깔끔한 상태로 여러 권 비치돼 있어서 정말 한 권 구매할까 심히 고민했다. 고전전집은 이상하게 막상 사면 안 읽게 되는데도 구매하고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이다. 교수님의 추천으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구매했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당연히 완독은 못 했다.
지하에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커피를 구매한 사람들에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여기 역시 수많은 책들이 비치돼 있고, 독특하고 매력적인 포스터 상품들도 여러 장 판매하고 있었다. 실내 인테리어로 사용하기에 좋을 것 같았는데, 약간 힙한 느낌이 들어 우리 집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아 구매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순전히 보수동 책방거리를 구경만 하다 온 것 같아 약간 민망하기도 하네.
생각보다 무드가 좋아서 사진도 잘 나오던 곳. 금세 둘러보고 나왔다.
사라지는 서점들,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은 것처럼 보였다. 나름대로 책방골목 번영회라는 조직이 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힘쓰는 것처럼 보였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교습서도 판매하면서 생존을 도모하고 있지만 책 자체를 읽지 않는 나라에서, 그것도 중고책을 판매해서 얻는 수입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거리는 곧 사라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그럼에도 그 예상이 빗나가기를 소망하는 것은, 고전과 책, 아날로그가 가진 매력과 힘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자책이 발달해도 사람 손을 타는 책이 오래 살아남기를, 더 많은 힘을 가지면 좋겠다.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 내가 그 아날로그를 좋아하니까. 개인적으로 부산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이었던 보수동 책방거리. 부산에 다시 간다면 또 한 번 찾아가고 싶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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