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볼 만한 무료 전시회
혼자 있을 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걷는 것,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곳 저곳 걸어다녀야 하는, 또 담을 것이 많은공간이니까.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는 사진이 취미인 나로서는 미술이든 유물이든 미적인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을 보는 것으로부터 배우는 점들이 있기 때문.
웬만큼 비싸지 않으면 입장료는 큰 문제가 아니다. 다양한 전시회가 있지만 지방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전시회가 있냐 없냐를 중심으로 검색을 해보게 된다. 다양한 전시가 있지만, 내 취향이라는 것도 있기에 내 관심을 끄는 전시회를 본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던 중 알게 된 무료 전시회 하나.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으로 이루어진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 제목도 그렇지만, 그 수집가가 고 이건희 회장이라니. 심지어 무료다? 이건 참을 수 없다 생각해 휴일을 맞아 곧바로 국립광주박물관에 찾아갔다. 결과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운 전시 관람이었는데, 사진으로 담아온 간단한 후기를 남겨본다.
배움이 있는 전시
수집가의 다양한 취향이라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정말 다양한 종류의 미술품들이 존재했다. 이 미술품들 하나하나가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다양했다.
고 이병철 회장은 고려청자를 사랑했고, 고 이건희 회장은 백자를 좋아했다고. 처음엔 이런 병이 뭐라고 이렇게 큰 금액을 지불하며 수집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오디오 도슨트를 들으며 하나하나의 미술품들을 주목해서 보다보니 저마다의 매력이 정말 분명하고, 수백 년 전 사람들이 그런 매력들을 도자기 하나에 넣어놨다는 것을 생각하니 소유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누구도 함부로 이런 미술품들을 손으로 마구 잡아본 적은 없겠지만, 고화소 카메라로 확대해보았을 때 보이는 저 질감들을 보면 손으로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느낌일까?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런 백자를 어떤 가치로 생각하고, 어떻게 사용했을까? 미술품의 가치를 들으며 배우다보니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이전에도 미술관, 박물관에 자주 가보았고 여러 전시를 보았지만 이번만큼 유물에 대한 매력과 소중함을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신기한 경험이었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배움이라 생각한다. 한국사 공부를 하며 얼마나 많이 들었던 이름이던가. 심지어 공부를 하다보면 문제의 정답을 맞추기 위해 그들의 그림까지도 대략적으로 암기를 해야 한다. '대충 이런 느낌이면 이 사람 작품으로 찍어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그런데 그들의 진짜 그림을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선 몇 개로 사람의 형상을 그려내는 실력. 나뭇가지를 불상의 받침대처럼 표현한 표현력. 그저 몇 작품 본 정도이지만, 실제 그들의 작품을 보고,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시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
예술품을 단순히 나열해놓지만 않고 각각의 매력들을 배가시키기 위한 노력들도 눈에 들어왔다. 빔프로젝터를 적극 활용해서 작품과 어울리는 이미지들이 재생될 수 있도록 했고, 벽이나 배경의 색상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한 인상을 받았다.
작품과 전시의 톤 앤 매너가 잘 맞는달까. 각 테마별로 핵심 색상이 있었는데 청자와 백자 전시에는 주황색이, 정효자전과 경전이 있던 곳은 청록색이. 이런 배열들을 보면 이 전시 자체를 매력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에너지가 많이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것.
무료 전시회라는 타이틀
탁월한 예술품들, 신경 쓴 배열과 전시, 상세한 오디오 도슨트,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한 시설과 공간들까지. 무료로 보기엔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반영된 가치있는 전시회였다. 돈도 안 내고 들어가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엔, 그 전시된 작품들의 가치와 퀄리티가 너무 높았던 것 자체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의 지원을 통해 막대한 부를 누리는 대기업 회장으로서 사회적 공헌을 생각한다면 무료인 것이 합당하지 않나는 생각도 든다. 전시 마지막 출구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한 획을 그은 사람이 어떤 예술적 관점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살펴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가 가졌던 예술적 관점으로 인해 후대의 사람들이 옛날의 가치를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다면, 충분한지는 모르겠으나 적지는 않은 문화적 기여라고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시기에 따라 전시되는 항목도 다르다고 하니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공간이었다. 박물관 건물 자체도 매력적이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전시들이 진행 중이었으니 아이들과 함께 오디오 도슨트를 들으며 관람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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