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MUJI)의 늪
심플함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 무인양품이 기여한 바가 굉장히 크다. 딱히 무언가를 디자인하지 않은 것 같다. 허레허식이 없달까.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매력적이다. 볼펜도 그냥 평범한 원통이고, 노트들도 그냥 일반적인 노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무인양품이 만들면 매력적이다. 간단함, 심플함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데에는 탁월한 브랜드다.
무인양품 간판만 보이면 일단 눈이 돌아간다. 꼭 볼펜 하나는 사서 나온다. 여유가 있을 때면 리필 노트들을 쟁여놓기도 하고, 딱히 쓸 데는 없지만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싶은 필기구들을 사기도 한다. 가끔은 티셔츠를 구매하기도 하는데, 면이 참 좋아서 그런지 몇 년을 입어도 꽤나 짱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 번 매장에 발을 들이면 정말 사고 싶은 것들이 끝도 없이 눈에 들어와 그냥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무인양품은 늪이다 늪.
그래도 한동안 시골에서 살며 무인양품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았다. 주변에 알파문구라도 하나 있으니 다행이라 여길 정도로 시골에 살고 있으니 무인양품은 무슨 무인양품. 그러다 잠시 일보러 나갔던 시내 백화점에서 무인양품 매장 간판을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입장했고, 나오는 내 손에 2023년 플래너와 리필 노트가 손에 들려 있었다. 마침 2022년을 거의 마무리해가는 때에 구매한 2023년 무인양품 플래너와 리필 노트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본다.
무인양품 2023년 플래너
매년 연말 연초가 되면 플래너를 구매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한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플래너를 구매하고, 심기일전해서 일 년 잘 써보겠다고 다짐하지만 제대로 완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민한다. 나름대로 괜찮다는, 비싸다는 플래너도 구매해봤지만 실패하기 일쑤였다. 딱히 무언가를 쓰는 것을 귀찮아 하거나 힘들어해서가 아니다. 필기하는 것 좋고, 내 일정 손수 적어 놓는 것 굉장히 좋아한다. 특히 MBTI에서 J성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오는 필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다만 그것보다 핸드폰으로 캘린더에 일정을 기입하는 것이, 미리알림 앱에 해야 할 to do list를 적어놓는 것이 빠르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플래너는 2월쯤 되면 내 주변에서 사라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플래너 구매를 지양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플래너 자체를 구매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연말 연초의 분위기에 취해 플래너 하나 구매하는 것은 꽤나 내게 도전을 주기 때문이다. 한 해 잘 마무리해야지, 새 해 잘 계획해보고 성실하게 살아내야지. 플래너 한 권 구매하는 것으로부터 연말연초의 우울감을 벗어내고 동력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구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다만 이제 몰스킨이나 프랭클린 같은 비싼 플래너를 구매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무인양품 2023 플래너는 내게 너무 적절한 대안이었고.
무인양품 2023 플래너는 먼슬리와 위클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슬리 페이지만 봐도 무인양품이 만드는 제품의 특징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깔끔하고, 명확하고, 실용적이다. 먼슬리 써본 사람은 안다. 한 칸에 기록해야 할 것들이 꽤 많은데, 생각보다 시중에 판매되는 먼슬리 플래너들이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각 칸이 너무 작아서 일정을 기입하다보면 다른 날로 삐죽삐죽 빠져나가는 게 익숙해진다. 무인양품 2023 플래너는 하루 칸들이 시원시원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에 그런 과정으로부터 얻는 소소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
무인양품 2023 플래너의 위클리 페이지는 이렇게 구성돼 있다. 위클리 역시 깔끔하게 구성돼 있는데, 왼쪽은 한 주 일정을 기입할 수 있도록 돼 있고 오른쪽은 격자무늬로 필요한 방식대로 기입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업무를 보다보면 한 주 일정을 정리하면서 세세하게 기억하고 계획해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기는데, 그런 점에서 무지 2023 플래너는 매우 활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활용도와 심플함, 미적 매력을 함께 잡는 것이 무인양품의 매력임을 한 번 더 확인한다.
특히 필자가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 이 접히는 부분이다. 무인양품 플래너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제작이 되는데, 하나는 링으로 체결되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필자가 구매한 노트 형식이다. 플래너를 쓰다보면 왼쪽 페이지를 작성할 때 링이 손에 걸려 필기의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무인양품 2023 플래너는 완전하게 접히는 구조로 이루어진 노트 방식 제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필기 불편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플래너 쓸 때 지저분하게 써지거나 글씨가 이상하게 써지면 플래너를 꾸준히 쓰려는 마음이 팍 식기에 필기가 편한 방식으로 제작된 게 굉장히 중요하다.
무인양품 리필 노트
무인양품 2023 플래너를 구매하면서 한 가지 더 구매한 게 있는데 무인양품 리필노트다. 무인양품은 이런 제품들을 오래 전부터 많이 출시해왔다. 자신이 원하는 속지들로 노트를 구성할 수 있는 제품들이 많은데, 내부 속지도 다양하고, 외부 커버도 클리어파일 형태부터 시작해 일반적인 노트까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도록 판매를 하고 있다.
필자는 크래프트 커버 2종류와 속지 3종류를 구매했는데, 올해 연말부터 시작해서 업무 및 개인 기록에 지속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세 가지 종류의 속지를 구매하게 됐다.
먼저 크래프트 커버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링을 위 아래로 당기면 이 링들이 쉽게 분리가 된다. 그러면 속지를 끼우고 다시 체결을 해서 노트 방식으로 활용을 하면 된다. 활용 방법을 기록한 설명서가 제품 안에 들어 있어서 굉장히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링 자체도 견고해서 쉽게 부러지거나 파손될 것 같지는 않은데, 다만 오픈되는 구조가 너무 간단해서 사용 중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염려가 잠깐 들기는 했다. 물론 잠깐 사용해보니 의도하고 열지 않는 한 쉽게 열리진 않는다.
필자는 도트 노트, 줄 노트, 격자 노트 속지를 선택했다. 개인적인 기준이지만 도트 노트는 자율성이 높은 대신 깔끔하고 가지런한 필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낙서나 메모에 사용하고, 나머지 두 종류의 속지는 업무에서나 일상에서나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속지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여행 중 일기 작성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도트 속지 30매와 격자 속지 15매를 껴주었고, 필자는 업무 중 사용할 계획이라 격자 노트 50매를 커버에 끼워 놓았다.
사실 속지들의 종류가 엄청 특별하고 특이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취향과 목적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그 종류뿐 아니라 분량까지도 원하는 대로 넣을 수 있다는 자율성이 매우 매력적일 뿐이다. 아, 물론 종이의 퀄리티도 굉장히 좋다. 웬만한 볼펜으로 기입해도 뒷장에 흔적이 남거나 번지거나 하지 않는다. 이 속지를 손으로 만져보면 '꽤 좋은 종이네' 생각할 정도다.
대략 속지를 체결해놓은 모습이다. 이렇게 무인양품 2023 플래너와 크래프트 커버, 속지 세 종류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봤다. 이 사진들을 보며 무인양품을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글까지 쓰냐'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깔끔함과 활용성, 자율성까지 근본적인 개념들이 한 데 엮여 있는 제품, 그것도 꽤나 마감이 좋은 제품들을 손에 쥘 때면 이상하게 매우 높은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게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신비한 점이다. 일단 무인양품 매장에 가보시라. 볼펜부터 옷까지, 마냥 저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비싸지 않은 금액 속에서 퀄리티 좋은 물건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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