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안경이야기
TVR아넬 셀룰로이드 미드나잇그린 색상 44사이즈. 정말 어렵게 구한 안경이고, 또 그만큼 만족도도 매우 높은 안경이다. 안경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안경에 대한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있었는데, 그래도 착용해본 입장에서의 글을 간단하게 기록해볼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써보기로 했다.
사실 안경이야기 시리즈를 더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린드버그 로빈, 가메만넨 102, 르노 231에 대한 안경 글을 나름 시리즈로 쓰면서 '이 시리즈는 오래 쓸 순 없겠구나' 생각했다. 아무래도 고급 안경테에 대한 궁금증과 수요는 많은 데 비해, 내게 어울리고 소장하고 싶으며, 그럴 수 있도록 여건이 허락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처참한 상황에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글은 굳이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가메만넨 102 모델에 대해서 쓸 때에는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결국 네 번째 안경이야기 글을 쓰게 됐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TVR아넬은 매우 특별한 브랜드다. 조니뎁 안경으로도 많이 알려진 뿔테 안경은 아넬 스타일 안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아넬 스타일은 그 자체로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높고 웬만한 얼굴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많은 사람의 얼굴에 잘 어울린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이고, 당연히 많은 브랜드들이 아넬 스타일의 안경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하만옵티컬, 타르트옵티컬, 모스콧 등 다양하다. 그리고 TVR 역시 아넬 스타일의 안경을 만들어내는, 여러 브랜드 중 하나의 브랜드이다. 그런데 왜 이 브랜드가 유독 특별할까? 왜 여러 경쟁사의 아넬 스타일 안경이 존재함에도 굳이 TVR을 선택해야 할까? TVR아넬 미드나잇그린 셀룰로이드 44 사이즈 안경을 반년 정도 착용해보면서, TVR의 안경이 왜 특별한지 그 이유에 대해서 기록해보려고 한다.
TVR이 특별한 이유
TVR 셀룰로이드 아넬 스타일 안경이 특별한 이유 중 핵심은 고전 아넬 스타일을 그대로 복각하는 데에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거다. TVR이라는 브랜드명은 True Vintage Revival 의 약자이다. 진짜 빈티지의 부활. 이름에서부터 자신들이 고유한 전통을 부활시켰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 이들이 이렇게 자신할 수 있는 건, 100%에 가까운 아넬 스타일 복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넬 스타일 안경의 시작은 1940년대 타르트 옵티컬이라는 미국 회사에서부터라고 보는데, 이 회사는 1970년 파산하여 사라진다. 즉 역사와 전통을 온전하게 보존한 아넬 안경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조니뎁이 그 타르트 옵티컬의 아넬 안경을 구해다 쓰기 시작하면서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각기 저마다 자신들 회사의 아넬이 전통 있는 아넬이라고 주장하는 마켓팅 전쟁이 벌어진 거다.
물론 TVR이 아넬 복각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는 것도 자신들의 마켓팅 기술일 것이고, 그것을 신뢰하며 TVR 아넬을 구매한 것은 그 마켓팅에 당한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TVR아넬을 착용해보면 오리지날 아넬이 어떠했는지 본 적도 없음에도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정말 높구나'를 느끼게 된다. 아넬 스타일은 거의 다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착용해보면 브랜드마다, 디자인마다 이미지가 다르고 착용감도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조금 차이가 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어렵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브랜드의 아넬을 한 번씩은 다 착용해봐야 한다. 가능하다면 조금 큰 안경점에 가서 아넬 스타일 안경들을 브랜드별로 써보시라. 정말 착용했을 때 이미지가 모두 다르다. 그만큼 아넬은 아넬 스타일이라는 단어로 묶여 있긴 하지만,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디자인적으로 완성도 높고, 얼굴에 잘 어울리며, 안경 그 자체로도 예뻤던 것이 바로 TVR아넬이다.
일단 다른 어떤 브랜드들보다 테의 굵기가 얇다. 다른 브랜드들의 아넬 안경은 다 두껍고 무겁다. 특히 모스콧이 예쁘다고 모스콧 아넬 착용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거다. 당장은 예뻐서 쓰는데 안경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다고. 그런데 TVR은 매우 가볍다. 르노, 린드버그를 착용해본 입장에서 '뿔테'라고 하면 어느 정도 예상하는 무게치가 있는데, TVR은 그 예상치보다 가벼운 무게였다. 아마 요즘 뿔테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셀룰로이드를 활용해서 제작한 제품이기 때문일 것인데, 지금은 TVR도 셀룰로이드 공급이 부족해 아세테이트를 사용하는 쪽으로 이동한다는 글을 본 것 같다.
또 색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검정색 색상은 품귀현상을 보여 구할 수가 없었다. 서울, 인천의 거의 모든 매장에 연락을 해봤지만 검은색 아넬 44 사이즈를 구할 수 없었다. 구매 당시 재고가 들어오는 시기를 알 수 없다는 답변들을 들었고, 본사 역시 재 생산 자체가 반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이대로 구매를 못 하게 되나 생각했는데, 한 곳에서 미드나잇그린이라는 색상이 있다는 답변을 들은 게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장 달려가 착용을 해봤는데, 이 색상을 선택한 게 정말 탁월했던 선택이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검은색처럼 보인다. 평소 실내에서도 거의 검은색으로 보인다. 그런데 햇빛을 받거나 강한 빛이 있는 곳으로 가면 약간의 초록빛을 띈다. 나는 개인적으로 튀는 색을 굉장히 싫어한다. 옷도 무채색을 주로 입고, 가방, 안경류도 당연히 다 검은색이 베이스다. 그런데 이 미드나잇그린 색상은 그런 내가 보기에도 무난하게 수용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정도로 탁월하게 빠진 색상이다. 마치 GV80 그린 색상을 볼 때의 느낌을 받는다. 단정하면서도 너무 딱딱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그런 색상이기에 구할 수 있다면 강력추천하고 싶은 색이다.
착용한 사진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결국 내 사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모델이 나라는 점이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안경을 보시기 바란다.
본사의 대응
마지막으로 본사의 대응을 칭찬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TVR 아넬은 구매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다. 셀룰로이드를 일본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과정들을 거치기 때문에 대량생산에 제한이 있다. 물론 이런 고가의 안경을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지는 않기 때문에 수요가 폭증이라 하긴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나처럼 안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하기에 수요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공급은 너무나 부족하니 물건 구하게는 게 일이라는 것.
재고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각 매장에 연락을 돌려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TVR 본사와 소통을 하는 것이었다. TVR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는데 DM을 통해서 재고 확인도 부탁드리고, 재고가 없으면 재입고는 언제인지를 여쭤보는 등 여러 가지 소통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각 물음에 대해 담당자가 친절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줌으로써 소비자로서 가지고 있는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 안경을 구매한 후에 감사인사를 전했는데, TVR에서 소소한 선물들을 발송해주셨다. TVR의 브랜드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포스터와 배지들이 담겨 있었는데,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이 브랜드 자체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는 경험들이었다.
만약 아넬 스타일 안경을 찾아보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강력하게 두 가지를 추천한다. 첫째, 대형매장에 가서 아넬 안경들을 써보시라.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다른 내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여러 브랜드의 특징들을 눈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TVR 아넬을 꼭 써보시라. TVR 아넬은 취급하는 매장이 한정되어 있다. 본사가 여러 안경점에 다 뿌리는 스타일이 아니고, 몇몇 협력사를 선정하는 방식. 그 매장들을 찾아 방문해서 TVR을 써보면, 왜 필자가 이렇게나 TVR을 극찬하는지 알 수 있을 거다. 확실한 건 다른 어떤 브랜드들과 비교해도 TVR의 색, 디자인, 무게, 착용감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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